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쯩 자매 (문단 편집) === 항거의 전개 === 언니 쯩짝이 19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이웃 마을 '쭈지엔'의 '티삭'(Thi Sách)과 혼인했다. 베트남에 전승되는 전설에 따르면 쯩 자매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언니인 쯩짝의 남편 티삭이 [[후한]]의 [[태수#s-2]]에게 처형당했기 때문이었으며 티삭은 부당하게 대우받는 [[베트남인]]을 위해 투쟁했다고 묘사된다. 이후 쯩짝과 쯩니 자매는 군중들 앞에서 "압제자를 몰아내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막강한 후한 군대의 위협 앞에 베트남인들은 행동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쯩 자매는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 화살로 [[호랑이]]를 사냥해서 그 가죽을 벗겨 전투 명령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쯩 자매의 강인함과 의지에 감동한 베트남 민중들은 쯩 자매의 지휘하에 점령군을 몰아낼 준비를 했다. 드디어 서기 40년 기병대로 중무장한 강력한 한군에 맞서 베트남 민중들은 봉기했다. 무기도 전술도 신식 무기와 정복 전쟁으로 단련된 강력한 한군보다 훨씬 뒤떨어졌지만, 식민지배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 하나로 베트남군은 한군에 맞섰다. 언니 쯩짝은 뛰어난 군사 전략가였고 동생 쯩니는 공포를 모르는 타고난 전사였다. 한나라군은 이를 진압하고자 쯩 자매가 이끄는 봉기군과 수차례 교전을 벌였지만 증강되는 세력을 업고 달려드는 반란군이었던지라 한군은 점차 베트남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게다가 머지않아 쯩 자매의 베트남군은 당시 한나라가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려고 설치한 식민지 [[군(행정구역)|군(郡)]]인 교지(交趾)를 점령하고 베트남에 주둔하던 한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기세를 타고 언니 쯩짝이 왕위에 올라 후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최초의 독립된 왕국을 선포하여 봉기의 위세가 절정에 달했다. 한편 후한의 조정에게는 설상가상으로 쯩 자매의 반란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접한 인근의 수많은 성들 및 마을들이 모두 쯩 자매의 세력권에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키면서 그 영역이 오늘날 [[광둥성]] 남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결국 이는 제국의 변방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제국의 영토이자 남방 식민지 영토가 뚝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으니 당연히 좌시할 리 없었던 후한은 베트남 반란군을 진압하고자 이제 점령군이 아닌 진짜 토벌군을 파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토벌군의 대장으로 임명된 이가 [[노익장]]의 유래이자 [[삼국지]]에 나오는 [[마등]], [[마초]]의 선조였던 [[명장]] '''[[마원(후한)|마원]]'''(馬援)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